접시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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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미 2,719 3 2002.10.0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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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 했읍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기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길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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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 꽃천사 루루어무이랍니다. 우리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모두 행복합시다.

댓글3

유은미님의 댓글

유은미 글쓴이 2002.10.05 04:03
정말루 시인들은 대단한것 같아요 세상의 여러가지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말들로 다시 되돌리는걸 보면. 언니 언니의 시도 멋져잉.이이이잉 ^^ 나도 그에 못지 않은 시가 있는데. 깊은산속 옹달샘 누가누가 와서 먹나 새벽에 토기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다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넬리母님의 댓글

넬리母 2002.10.05 03:53
전 영화는 못 봤어요..이 시를 보면서..여기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로 저보고 글을 쓰라고 하면..전 논설문이나..설명문...밖에 못 쓸텐데...역시나 시인들은 대단하단 생각이 다시 드네요...아..어찌하면 시를 쓸 수가 있을까요...저도 시 쓰고 싶어요..아 생각났다.. 제목 학교종...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훔..방금 생각나서 그냥 시를 지어봤어요.. 이 시의 주제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뛰어놀면서도..자신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전세대가 이루어놓은 훌륭한 유산을 계승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멋지죠..~.~:; 퍼퍼퍼퍼펖퍼퍼퍼퍽~~~~~~~앗...꾸벅...-.-;;

유은미님의 댓글

유은미 글쓴이 2002.10.05 00:58
제가 고등학교때 접시꽃 당신이라는 영화가 나왔어요그때 접시꽃 당신을 보며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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