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애견편지/가까이 흐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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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미 3,936 7 2003.04.0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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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편지/가까이 흐르는 사랑


 슈나우저 잡종을 분양 받은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장석주 시인이 강아지를 분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와 함께 장 시인 집에 이른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우리는 장 시인이 끓여 준 커피를 마시고 까만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 이름을 '보보'라고 짓고 정성스레 기르며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녔다. 보보는 내 앞에 가기보다
뒤를 따랐다. 짖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았다. 그러고보니
그 놈은 눈빛이라든지 하는 품이 우울한 철학자 같았다.
아내와 나는 거의 동시에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러다가 우울병에라도 걸려 하늘 보고 '컹컹컹컹'
울어 댄다면 동네 개들이 모두 같이 짖을 것이고
우리는 잠도 못 자게 되고 말 것이다. 아내와 나는
보보의 친구를 구하기로 했다.

 내가 강아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번에는 세종갤러리
이달희 시인이 말티즈 잡종 한 마리를 안고 왔다.
털이 북실북실한 놈이었다. 한데 털이 북실북실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떻게나 먹탐이 센지 보보의 밥을 반쯤 빼앗아
먹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닥치는 대로 먹어 대다 결국 배탈이
나서 나는 그 놈을 차에 태우고 양수리 동물병원을 세 번이나
왔다갔다 해야 했다.

 그럭저럭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말티즈는 강아지
신세를 면하게 됐다. 허리가 길쭉해지고 짖는 소리도
집을 울렸다. 나는 보보와 말티즈를 데리고 산르로 들로 다녔다.
이제 보보는 내 뒤를 따르는 우울한 개가 아니었다.
 산을 오를 때면 바람처럼 날았다. 말티즈도 보보를 따라잡으려
 땀을 흘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말티즈의 먹성뿐이었다.
어느 날은 보보의 밥을 빼앗아 먹고도 양이 차지 않았던지
이웃집에서 족발을 두세 개 훔쳐 와 종일 씹어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빨간 피를 한 그릇이나 토해 냈다.
나는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급성장출혈이라면서
이틀은 입원시켜야겠다고 했다.

 내가 정말 놀란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말티즈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오니 보보가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저녁도 먹지 않고 자지도 않았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말티즈가 돌아온 이틀 뒤에야
보보는 말티즈 코에 자기 코를 대고 한동안 킁킁대더니
말티즈 뒤를 엉금엉금 따라다녔다. 말티즈가 쉬면 보보도
쉬고 말티즈가 걸으면 보보도 걸었다.
나는 '견정(犬情)이라는 것도 아름답고 슬픈 것이로구나
'하고 탄식했다.
개나 사람이나 나무들이나 함께 있어야 아름다운 듯 했다.

@ 좋은생각 4월호 최하림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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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

범이님의 댓글

범이 2003.04.13 00:34
하하 저도 봤어요 ^^ 매월 1부씩 사거든요. 다른잡지에도 실려 있던데 Paper 에도 실려있고 ^^ 내가 늦었네

미니애니맘님의 댓글

미니애니맘 2003.04.09 22:48
함께 있어 아름다운 이 체험을 나도 한적이 있어. 우리 미니를 잃고 정신없을때 우리애니 밥도 안먹고 현관앞에 앉아서 마냥 기다리는거야, 열흘만에 찾아서 집에 데리고 왔더니 그때사 밥도 먹고 생기가 도는게 정말 너무나 애처로웠었지. 어떤땐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이 아이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이 넘치는 이세상에서.....

아리&깜코님의 댓글

아리&깜코 2003.04.09 01:23
맞아..아주 감동적이야.. 나도 가급적 깜코나 아리 둘중에 하나만 데리고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하려고 해... 혹시나 그 짧은 시간동안 친구의 행방에 대해서 불안해할까봐.... 음..역시.....친구란 참 좋은 것이구나...~.~;;

가뭄에 단비님의 댓글

가뭄에 단비 2003.04.08 22:22
정말 감동적이야...견정...^^ 보보랑 그 말티즈 항상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과일촌님의 댓글

과일촌 2003.04.08 20:28
그렇구나... 나는 그토록 사랑까지 할줄은 몰랐는데 심오한 사랑이 있었구나. 나보다 그 말티즈가 나은것 같아. 나는 남친이랑 헤어졌을때도 배고프면 양판으로다 비벼먹고 그랬는데 굶기까지 하는 말티즈가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딸기는 다래를 키우는 것 같아. 오줌싸면 얼른가서 햝아주고 그래.. 자몽이도 가끔 그렇고 말이야. ^^;;; 그런것도 사랑일래나?................

불타는 연장통님의 댓글

불타는 연장통 2003.04.08 18:37
진한 감동이 잔잔하게 흐르네.. 사람못지 않게..말못하는 짐승이지만..더 애틋함을 갖고 있는것 같아...~~ 함께 한다는것.. 참 소중한거지.!! ^^ 고로..오늘 다시 나와 함께하는.. 모든사람들을 떠올려봐야겠다~~ 우리 팔불출 언니,동생들도 떠올리며..^^~

달려라하니님의 댓글

달려라하니 2003.04.08 15:20
^___^ 미소한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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